- 제목
- 남자 연극 독백 / 북어대가리 / 기임
- 작성일자
- 2019.05.23
그것 역시 너의 수법이지! 상자, 상자, 상자들! 내가 심술부린다고 생각하면 너는 그 빌어먹을 상자로써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려고 해. 제자리에 옮겨놓아라, 정확하게 쌓아라, 절대로 틀려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 나를 호되게 야단치지! (다시 침대에 걸터 앉아 화투장을 섞으며) 그렇지만 오늘은 글렀어. 오늘은, 상자 하나가 잘못됐거든! 그렇게 됐어. 오늘 내보낸 상자 중에서 하나가 틀렸지. 숫자는 맞았지. 내가 아무 상자나 슬쩍 채워 넣었거든. 어떤 상자인지는 나도 몰라. 어쨌든 나한테는 잘된 일이라구. 미운 짓을 했으니까 너도 이제 나를 이 창고 속에 붙잡아 두지는 않을 테고, 나도 나갈 때 홀가분해서 좋겠지. 여봐, 의붓엄마, 얼굴이 왜 그렇게 창백해? 자식 나가는 게 걱정이야? 아니면, 잘못된 상자가 더 걱정이야? 오늘은 그 일 때문에 바쁘겠군. 어때, 우리 둘이서 화투 칠까? 하지만 너는 시간이 없어서 못할 거야, 그렇지?